시간이 필요하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은 '시간이 걸립니다.'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영어는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놀면서 익숙해지는 거라니 얼마나 달콤한 말인가요?
그렇지만 당연하게도 책에서 주장하는 학습 방법인 '노는 영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요.
그런데 이 책이 말하는 학습법에 필요한 엄청난 시간이 '한국 놈'들의 성격과 맞지 않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성격이 급하고 초조합니다.
정확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지만 자신의 시간을 자신을 위해 쓸 여유가 없어요.
'ㅇㅇㅇㅇ 한 달 완성, 한 권으로 끝내는 ㅇㅇㅇ, ㅇㅇㅇㅇ100일의 기적' 등등
금방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주변과 비교하며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을 찾습니다.
그런데 시간을 들여 영어랑 놀아보라는 겁니다. 과연 이게 되는 학습법인가요?
노는 영어의 학습법
성인의 영어 공부에 있어서 2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성인의 영어 학습은 어린 시절의 한국어 학습과는 달라서 정확한 체계와 이해를 바탕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성인의 영어 학습이라고 하더라도 어린이가 언어를 배우듯이 듣기와 말하기를 먼저 연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책은 두 번째 방법인 아이처럼 영어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국 학생들은 정규 교육 과정까지만 하더라도 적어도 10년 이상은 영어 공부를 해왔을 겁니다. 그러나 영어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뭅니다.
정확한 개념과 이해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결과만 본다면 첫 번째 방법은 분명 뭔가 문제가 있습니다.
'노는 영어'의 학습법은 이렇습니다.
'관심이 가는, 즐거운 영어 콘텐츠를 한국어의 도움 없이 즐겨라.'
한국어 자막 없이 미드나 영화, 유튜브를 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학습 과정속에서 느끼게 되는 답답함과 좌절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이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영어가 습득이 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세상에 쉬운 일이 하나도 없는데, 이 학습법 역시 그렇습니다.
이 책을 보고 해본 것
한글 자막 없이 미드 보기를 몇 차례 시도해 봤습니다.
책에서는 1화를 한글 자막으로 보고 스토리에 감을 잡은 후, 영어 자막 혹은 자막 없이 보라고 안내합니다.
물론 쉽지 않다는 걸 책에서도 말하고 있어요.
'한글 자막 없이도 꽤 볼만하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부분도 있는데 그렇진 않았습니다.
볼 수는 있었어요. 나이를 괜히 먹은 게 아니기 때문에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화면 속 정보들을 통해 이야기를 쫓을 순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굉장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논다'에 혹해선 안 됩니다.
한글 자막을 끄는 순간 얼마나 한글 자막에 의존했었는지 바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어가 읽을 수도 없는 낯선 나라의 언어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이해가 쉽게 되질 않으니 조금만 집중력이 떨어지면 금방 졸음이 몰려왔습니다. 음식을 먹거나 맥주를 마시면서 보겠다는 건 말도 안됩니다.
영어로 놀라고 하지만 노는 게 노는 게 아니었어요. 굉장한 의식적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이 학습법을 적용해 볼 만큼 재밌는 영어 콘텐츠를 만나는 것 역시 운이기에 더욱 쉽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몇 번 시도해 봤지만 결국 이 학습법으로 완주한 미드는 없습니다. 책에서 말하는 '뭔가 되는' 느낌까지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영어 자막의 함정
처음에는 저자가 말한 대로 영어 자막을 켜고 봤습니다.
자막이 나오면 눈이 자동으로 자막을 따라가게 되는데, 전혀 따라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말은 눈보다 빨랐어요.
자막에 시선이 쏠리면서 등장인물의 표정과 대사, 화면 속 정보에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어차피 제대로 읽을 수 없는 자막을 끄고 보니 인물의 표정, 입모양, 소리에 더 신경 쓸 수 있었습니다. (영어가 들린다는 건 아니에요.)
마치며
영어 책을 4권째 외우고 있습니다. 외우는 것과 듣고 말하는 것은 별개임을 절실히 느낍니다.
영어를 정말 잘하고 싶다면 외우는 것과 별개로 의식적인 듣기, 말하기 훈련이 반드시 필요해 보입니다.
앞서 성인의 영어 학습에 2가지 견해가 있다고 말했는데, 어느 한쪽에 답이 있다기보단 2가지 방법 모두 병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글 자막을 끄고 영어 콘텐츠를 보면 좌절감이 엄청난데, 만약 지금 실력으로 외국에 나가면 이런 좌절감을 똑같이 느끼지 않을까 생각해요.
굉장히 힘들겠지만 한글의 개입 없이 영어에 익숙해지는 일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일 것 같습니다.
요즘하고 있는 외우는 학습 방식과 '노는 영어'의 방법을 함께 해나갈 생각입니다.
자막 없이 보더라도 계속 보고 싶게끔 만드는 영어 콘텐츠를 만났으면 좋겠네요.
이 책은 구매한 지 시간이 오래 지났습니다. 저자의 유튜브를 보고 관심이 가서 책도 구입하고 카페도 가입하고 그랬는데요.
보통은 이런 책이 출간될 때는 충분히 팬층을 확보하고 책을 내는 게 일반적인데, 이 책은 그런 과정 없이 활동과 동시에 출간되었습니다.
그래서 '출간 빨'도 없이 금방 사람들의 관심에서 잊힌 책입니다.
당시에도 유튜브나 카페 활동이 활발하지 않았는데, 현재는 올라가 있던 영상도 모두 삭제되고 채널명도 바뀌었습니다.
이 방법으로 성공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쭉 들어보고 싶었는데 아쉬운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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