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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Books

이어령하다 - 김아타

by 712universe 2022.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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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어령 선생의 책을 몇 권 읽어 나가는 중이다. 이 책은 김아타라는 사진작가와 이어령 선생과의 마지막 대화를 담았다.

 

책의 구성이 편지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되어있어 글의 분량이 많지 않고 사진들도 여럿 실려있기에 읽기가 부담스럽지 않았다. 하지만 김아타 작가 특유의 말투랄지 표현 방법이 내가 이해하기엔 난해한 부분이 있어 초반에 읽기를 포기하려고 했었다. 작가는 이어령 선생에 대한 존경심을 아낌없이 한가득 표현하는데 이 역시 나에겐 몹시 불편했다. 나에겐 그런 사람이 없기에 이해하지 못하고 불편했던 것 같다. 하지만 계속해 읽어나가면서 '진심'이란 생각이 들었다. '진심이기 때문에 이 정도까지 표현을 할 수 있었겠구나.'

 

인간으로 태어나 단 한 번 소중한 삶을 사는데 이 정도로 존경하는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과 교감을 나눌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귀한 일인가 생각해봤다. 이렇게 존경하는 분의 마지막을 함께 하면서 사진까지 담을 수 있는 영광이라니.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경험을 하지 못하고 눈 감을 것이다. 나에게는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고작 책 한 권으로 접했을 뿐이지만, 김아타라는 사람은 예술가가 맞는 것 같다. 독특한 작품들을 내놓으며 세상과 충돌해 온 것이다. 예술혼이 없다면 절대 불가능할 터. 예술한다는 사람들을 삐딱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게 작품이라고?' '예술가 흉내 내고 있다'며 손가락질 하기 일수다. (자신들은 삶에 질질 끌려다니며 살뿐이면서 말이다.) 자유로워보이는 예술가의 세계지만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릴 것 같으면 철저히 배척당하기도 한다. 이런 벽을 넘어서 세상에 이름을 알린다는 게 무척 대단한 일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런 에너지가 있는 사람인가? 생각해봤다. 한 때  그림을 그려보겠다고 까불대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나에겐 그런 예술가의 에너지가 없었다. 책을 읽고 나니 김아타 작가가 궁금해졌다.

 

처음 읽기 시작했을땐 굉장히 거부감이 드는 책이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들과 사람에 대한 무한한 존경이 불편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마음에 남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어령 선생의 글을 좋아한다면 읽어봐도 좋을 책이다. 처음에 이야기한 것처럼 분량이 적기 때문에 가볍게 읽기도 괜찮겠다.


 
이어령하다
마지막 수를 놓듯, 들숨 사이 날숨 사이 말을 빚던 선생께서 당신을 사진하라 했다. 선생도, 나도, 침묵했다. 선생을 만난 지 7년, 선생은 언제나 당당했다. 한순간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듯, 우주를 지휘하듯, 때로는 온화하고 때로는 격정적으로 당신을 통제했다. 이제, 초월했다. 겁劫의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시詩가 된 인간 이어령을 사진했다. 아름다운 영혼이다. 선생은 이른 시간 동시했다. 동요했다. 시詩를 쓰고, 소설하고 희곡하고 평론했다. 평생을 인문의 정점에서 만다라보다 더 화려하고 섬세한 언어로 동서양을 직조했다. 그림하고 지우기를 90해를 계속했다. 선생은 나를 보고, 나는 선생을 보았다. 서로 마주했다. 아름다운 영혼이다. 아름다운 시간이다. 비어 있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그대로다. 향기가 난다. 선생의 마지막 초상이다. 이제 거푸집이 된 당신을 ‘사진하라’ 했다. 블랙홀에 가까운 선생의 마지막 시간이다. 도배지도 걷고, 미장도 걷고, 벽돌마저 걷어낸 골조만 남은 언어적 구조가 시詩라면, 모든 인간은 결국 한 편의 시가 된다. 가장 난해하고 가장 단순한 서사, 당신은 시가 되었다.
저자
김아타
출판
맥스미디어
출판일
2022.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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